<우리의 20세기>는 1979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세 명의 여성과 한 소년의 일상을 통하여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 인물들의 정체성과 사랑, 성장의 과정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감독 마이크 밀스는 자전적인 경험을 토대로 20세기말의 불안정한 시대와 여성들의 목소리, 그리고 감정의 연대를 감각적으로 직조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해석과 상징, 감독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중심으로 분석하겠습니다.
'시대'라는 거대한 인물의 탄생, 영화의 시간성과 해석
<우리의 20세기>는 명확한 플롯이나 사건 중심의 전개보다는 시간성과 감정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이지만 영화는 그들을 움직이는 배경으로서의 시대, 즉 1979년이라는 시점을 하나의 살아 있는 등장인물처럼 묘사합니다. 이 시대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석유 파동과 정치 불신이 이어지면서 펑크와 여성해방 운동, 심리치료 문화가 교차하던 시기입니다. 영화는 이를 교과서처럼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책 제목, 대사 속의 단어들 등을 통하여 시대를 채워 넣습니다. 예컨대 주인공 제이미가 친구 줄리와 청춘의 정체성을 놓고서 대화할 때, 우리는 단순한 청소년의 고민을 넘어서 세대적인 혼란과 감정의 단절을 체감하게 됩니다. 줄리가 말하길, 남자애들은 관계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려고 해. 난 그런 방식이 싫어라는 말은 1970년대 말, 섹슈얼리티와 여성의 자율성이 충돌하던 시대의 핵심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이러한 요소는 영화가 단순히 누구의 성장기가 아닌, 한 시대를 함께 통과하는 모든 이의 집합적인 자화상임을 보여줍니다. 마이크 밀스는 시대의 단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그 시대 속 인물이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20세기라는 이름을 인물보다 먼저 타이틀에 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여성들의 관계로 엮어낸 감정의 연대 : 감독이 숨겨놓은 구조적 메시지
이 영화의 또 다른 독특한 구조는 중심 인물 소년 제이미가 이야기를 이끌어내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도로시아, 애비, 줄리 이 세 여성은 각기 다른 연령대와 성향을 가졌지만 모두 제이미의 성장에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단순히 양육자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이미가 이들을 통해 배우는 동시에, 그들도 스스로를 발견하고 변화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도로시아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을 보이지만 아들과의 거리감에 외로움을 느낍니다. 애비는 펑크와 사진이라는 표현 방식을 통해 상처를 견디는 인물이고 줄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사춘기 소녀입니다. 이 여성들은 각각 사랑과 권력, 성별, 자유라는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지니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보듬고 질문하면서 감정적인 연대를 쌓아간다는 점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구조는 내레이션입니다. 제이미뿐만 아니라 도로시와 애비, 줄리까지 각자의 시점을 통해 미래를 예언하거나 과거를 회고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시간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감정의 그물망 속에 있다는 부분을 보여주면서 각 인물의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태에 있음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감독의 연출 방식은 마이크 밀스 감독이 단순히 개인의 성장, 특정한 여성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모두가 성장하면서 서로를 반영하며 자신을 알아간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는 것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사랑과 정체성에 관련한 감독의 질문
<우리의 20세기>는 표면적으로는 성장 영화, 혹은 페미니즘 드라마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우리는 누구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이 물음은 단지 주인공 제이미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도로시아도, 애비도 줄리도 모두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계속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도로시아는 고전적 가치관을 가진 세대이지만 아들에게 친구들을 초대하여 여러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라고 조언합니다. 애비는 자신의 병과 외로움 속에서도 제이미에게 넌 괜찮은 사람으로 자랄 거야라고 말하며, 줄리는 사랑을 주지 않으면서도 제이미에게 끌리는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감독 마이크 밀스는 사랑을 로맨으로 제한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를 사랑의 핵심으로 그립니다. "넌 엄마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시간이 지나면 더 멀어질 거고"라는 대사는 도로시아에 대한 제이미의 서술인데, 이 말에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공존합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그 관계의 태도가 바로 이 영화의 정서입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메시지는 사람은 완전히 이해될 수가 없고, 관계는 늘 어긋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더 다정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변화고 사랑의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서로를 지켜보는 태도야말로 20세기를 통과한 사람들이 남긴 정서적인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20세기>는 사건이 별로 없고 변화도 크지 않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감정의 파동, 전체성의 진동, 관계의 미묘한 움직임이 숨 쉬고 있습니다. 감독 마이크 밀스는 이 영화로 20세기를 지탱했던 여성들과 감정들, 질문들과 미완의 성장을 천천히 꺼내서 보여줍니다. 영화 속 대사는 종종 사라지고 화면은 오래된 사진처럼 바래지지만 남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간절함입니다. 그건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한 감정일 것입니다.